청년이 지방을 떠나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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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in readMar 18, 2020

[IDEA2050_026]

권기효 사회적협동조합 멘토리 이사장

출처 : 셔터스톡

지방 소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농산어촌 지역의 인구는 급감하고 있다. 많은 지자체들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고 다양하게 고민했는가? 그리고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가?

멘토리를 통해 지난 9년 동안 농산어촌의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지방의 소멸 위험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다. 일반적으로 ‘청년 인구 유출’은 지방 소멸의 주요 지표로 사용된다. 하지만 농산어촌 청소년들에게는 사람들의 이런 인식이 불편하게만 느껴진다.

전남 고흥에서 만난 한 친구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순천, 광주, 서울로 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 친구는 많은 이들의 응원 속에 ‘지역 인재’라는 칭송을 받으며 도시로 떠났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도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이 친구를 바라보는 지역의 시각은 ‘지역을 등진 괘씸한 청년’으로 바뀌었다. 지방 소멸의 지표에서도 이 친구는 고흥의 인재에서, 위기를 가속화시킨 한 사람이 되었다.

아래 그림은 사회적협동조합 멘토리가 지난 2016~2017년 농산어촌 중학교 2학년 3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농산어촌과 도시에 대한 청소년들의 인식이 확연히 대비된다. 이 결과는 청년 유출에 대한 외부 시각에 청소년들이 불편해하는 이유를 일정 부분 설명해준다.

강화에서 만난 친구들과도 ‘지방 소멸’에 대해 긴 시간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생각은 이랬다. “잘 모르겠어요. 이런 문제는 전 국민이 모두 고민해야 하는 문제 같아요. 여기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것 아닐까요?”

농산어촌의 청소년들과 나눈 경험이 쌓여가면서 지방에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지역 청년들이 고향을 떠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불편을 느끼게 됐다. 농산어촌의 청소년들은 지역의 삶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지만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해 누구도 함께 고민해주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자연스럽게 기회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지방 소멸의 원인을 청년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청소년과 청년들을 떠나보내고 있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한다.

놀이 문화도 없고, 할 일도 없고

“농산어촌에 살면 아이들은 마을과 자연에서 뛰어 놀며 성장할 수 있지 않나요?”

의외로 아직도 이런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어떤 지역에 가도 청소년은 도시 청소년과 마찬가지로 학교-학원-집의 굴레 속에서 살아간다. 지역 청소년들은 동네에 할 일이 없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방탈출 카페나 만화방 같은 공간에서 이뤄지는 단순한 ‘놀이’를 뜻한다. 하지만 도시를 몇 번 오가며 이런 활동을 즐긴 뒤에는 어떤 특정 행동이나 장소보다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맛집에서 밥을 먹는 정도로 시간을 보내며 또래끼리 어울려 놀 수 있는 ‘문화’를 원한다.

농산어촌 지역에 방탈출 카페를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청소년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놀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사실 농산어촌에도 프랜차이즈 카페나 pc방, 당구장과 같은 놀이 시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이런 시설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은 ‘어른용’과 ‘애들용’이라고 구분짓는 문화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청소년들이 스타벅스에서 차를 마시며 게임하고 있다고 해서 누가 눈치를 주거나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하지만 농산어촌에서는 청소년들이 그렇게 무리지어 있으면 “용돈을 헤프게 쓴다”, “공부 안 하고 노닥거린다” 등등 온갖 뒷말을 감수해야 한다.

배움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청소년들은 동네에서 하는 건 다 시시하다고 한다. 메이커 스페이스, 방과후 교육, 문화센터와 같이 청소년이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모두 도시에서 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아류들이다. 도시가 가지고 있는 인프라나 전문성은 가져오지 못한 채 껍데기만 가지고 온 프로그램은 청소년이 보기에도 어설프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고 ‘청소년은 즐기기만 하라’는 식으로는 청소년들에게 부정적인 인식만 심어줄 뿐이다. 지역 청소년들은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본인들이 직접 할 수 있는 재미있고 다양한 활동이다. 청소년 공간은 청소년의 감각으로 기획해야 하고, 청소년이 체험할 프로그램은 청소년의 욕구에 맞게 설계해야 한다. 이게 어려운 것은 청소년들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청소년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소년·청년을 떠나보내는 숨은 원인

지난해 광주에서 만난 친구들과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광주형 일자리가 주제로 나왔다. 결론은 “참여하기 싫다”였다. 이유는 박봉이 아니라 제조업이 매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단편적인 사례에 불과하지만 청년들이 지역의 전통적인 일자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하게 청소년은 대학을 가기 위해, 청년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지역을 떠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출처 : 프리픽

선거철이 되면서 많은 후보들이 지역 일자리 정책을 내세우지만 여전히 제조업 중심 일자리에 불과하다. 지역에 일자리가 없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다양한, 양질의 일자리가 없을 뿐이다. 우리는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새롭게 상상하고 정의해야 하며, 이 중심에는 지역의 청년들이 있어야 한다.

공장 유치했으니까 지역에서 일해, 인건비 줄 테니까 지역 기업에서 일해, 3천만 원 줄 테니까 지역에서 창업해,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모든 것을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고 청년들은 그저 따라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지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누구도 내놓을 수 없다면 그 답을 찾기 위해 당사자들과 기획 단계부터 함께해야 한다. 그렇게 지역은 청년들이 안심하고 도전할 수 있는 안전한 테스트베드가 돼야 한다.

“우리 동네에 자동차 공장이 들어선다면, 공장에서 일하는 수준으로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마 안 될 걸요. 여기 남아서 공장에서 일한다고 하면 제일 먼저 저희 부모님이 화를 내실 테니까요.”

“우리 동네에서 군청, 공기업, 공기업 하청 이 안에 들어가지 못 하면 사람 취급을 못 받아요. 동네 사람들이 ‘누구는 어디 취업(입학)했던데 너는 어디 갔니’라고 묻는데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까 그냥 도망치고 싶었어요.”

단순하게 청소년은 대학을 가기 위해, 청년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지역을 떠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아주 사소해보이지만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지역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인식’이다.

지역의 어른들은 청소년은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야 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번듯한 곳에 취업을 해야 하고, 결혼 적령기가 되면 가정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학에 갔는지, 취업을 했는지, 결혼을 했는지를 너무나 당연하게 묻는다. 그 한마디가 당사자들에게는 비수로 꽂히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심정을 지역 공동체분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아니, 이제 애들한테 말할 때도 눈치를 봐야 하네”라며 오히려 화를 냈다. 존중이라는 것은 나이가 많고 적음이 상관없고, 존중의 방식은 시대에 맞춰서 변화해야 한다. 지역의 청소년, 청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이런 사소한 배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역을 떠나게 만드는 장학제도

지자체가 지방 소멸에 제대로 대처하는지는 지역의 장학제도를 확인해보면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청소년, 청년들의 이탈이 문제라는 소멸 위험 지역 모두가 장학제도를 통해 지자체의 돈을 쏟아 부어서 청년들을 외부로 떠나보낸다.

<그림> 지역의 대표적인 장학제도들

현재 지역의 장학제도는 대부분 공부 잘하는 청소년, 청년들을 선정해 좋은 대학에 보내주는 것이다. 중학생부터 뽑혀 지역인재가 되면 해외연수, 학습지도 등 도시와 견줘도 부족하지 않을 혜택을 받으며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해 지역을 떠난다. 대학을 졸업하면 대기업에 취업하고, 도시에서 가정을 꾸려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장학기금은 지역에서 살아갈 청소년들에게 써야 한다. 공부가 재능인 친구들은 대학에 가고, 다른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재능을 살려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에 장학금을 써야 한다. 불합리한 장학제도를 고쳐보려고 나섰다가 장학생들의 엄청난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이미 작은 기득권이 생긴 이 기금은 외부에서 풀어낼 수 없다. 진심으로 청년들이 필요하다면 장학기금의 운용부터 바꿔야 한다.

잘못된 장학제도 때문에 지자체들이 돈을 쏟아부어 청년들을 외부로 내보내고 있다. 출처 : 프리픽

지방소멸 위험도의 가장 보편적인 척도로 사용하는 ‘지방 소멸 위험지수’는 20~30대 여성을 65세 노인 인구수로 나눈 것이다. 가임여성이라는 단어가 논란이 돼 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 지표에서는 여성을 출산의 대상으로만 판단하고 있다.

1 이하 : 소멸주의, 0.5 이하 : 소멸 위험(97개 도시)

젊은 여성들이 적으면 이 지역은 소멸할까? 반대로 많다고 소멸하지 않을까? 이는 정말 위험한 척도가 아닐 수 없다. 교육부는 지방의 작은 학교들을 본격적으로 통폐합하고 있다. 마을에서 학교가 사라지면 육아가 어렵게 되고 이로 인해 젊은 층이 떠나서 마을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20~30대 여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학교가 사라졌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이다.

이처럼 농산어촌 소도시들은 굉장히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소멸 위험을 출산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은 커다란 한계가 있음에도 2016년부터 계속해서 이 지표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지역 소멸에 대해 우리는 조금 더 다양한 요소로 판단해야 한다.

외부 청년이 와주기만 바라는 지자체들

지역의 아이들은 모두 떠나려고 하는데, 외부 청년을 불러들이기 위한 방법만 찾고 있는 지금의 방식이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지역에 청년이 없다는 지자체들은 하나 같이 막대한 예산을 사용해 유능한 외부 청년들이 와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지금 당장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한 두 명의 유능한 외부 청년이 아니라, 우리 지역에서 나고 자란 수백 명의 청소년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유능한 청년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역이 “아무것도 없어서 떠나야 할 곳”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이 된다면 그들은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 혹은 지역을 떠났다가도 기꺼이 돌아와 지역에서 삶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지역의 유출을 막고 더 많은 이들을 지역으로 유입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현상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로컬’이라는 단어가 주목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지방 도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자체장의 임기에 맞춰 단기 결과물로 잘 포장된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유행 때문에 외부의 유능한 사람들에게 자원이 집중돼 정작 지역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소외받는 현상이 더 심해질까 우려스럽다.

지방은 누구에게나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회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지역의 청소년과 청년이었으면 한다. 지난 날 의성군이 마늘로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 수많은 돈을 썼지만, 정작 의성군을 전세계에 알린 것은 5명의 컬링 국가대표 청년들이었다. 사람을 키우는 것은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권기효 사회적협동조합 멘토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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