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수·김진경·조현경·고동현·온누리·이원재

LAB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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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4 · 9 min read

* LAB2050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 포용국가 시대의 조직 운영 원리’ 보고서의 온라인 버전입니다. 주석, 참고문헌 등은 별도 포스트(링크)PDF 버전(다운로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건국 이래 수십 년 동안 ‘경제 성장’을 가장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삼았다. 이는 ‘경제성장률’이라는 하나의 지표로 요약되어 국가, 기업, 개인 모두가 지향하는 한국사회 전체의 목표로 작동했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내세웠던 국가 운영 목표로도 드러났다. 1960년대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이래 대한민국 정부는 경제 성장을 목표로, 사회의 자원을 동원해 배분하는 ‘개발국가(developmental state)’(Chalmers Johnson, 1982) 체제로 국가를 운영해 왔다.

이 체제 하에서 경제 성장은 빈부격차 해소, 환경보전 등의 다른 가치들을 압도하는 최우선 가치로 여겨졌다. 경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인권도, 노동도, 환경도 뒤로 미뤄졌다. 사회 각 부문에서도 경제 성장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하위 목표들이 의사 결정의 주요 요인으로 작동했다.

하위 목표 중 하나인 기업 이익 증대를 위해서는 노동권 보장, 협력업체들과의 공정 경쟁 등의 가치들은 소홀히 다뤄졌다. 제조 공정에서의 생산 효율성 극대화라는 목표는 생태계 보전과 지역 주민 건강이라는 가치를 압도했고 그 결과로 공장에서 배출된 유해물질들이 자연을 오염시켰다. 비용 절감을 통한 기업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 하에서는 국내 공장의 해외 이전도, 현지 노동자에 대한 비인간적 대우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부는 사람에 투자하는 복지 예산보다는 땅과 건물에 투자하는 토목 건설 예산을 앞세웠으며 ‘경제 인프라 확충’을 위해서라는 핑계를 댔다. 공공기관들은 보편적 서비스나 환경의 지속가능성은 뒤로 미루고 국민경제 발전이라는 목적을 앞세웠다. 이 모든 의사 결정들은 수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목표’에 부합한다는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켜켜이 쌓인 문제는 조용히 사라지지 않았다. 차례대로 비극적 사건으로 터져나왔고 누군가는 그 비용을 떠안고 희생당했다. 1991년 공장에서 배출된 독성물질이 대구 지역 상수원으로 흘러들어가게 한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1994년 서울 성수대교 붕괴와 1995년 삼풍아파트 붕괴는 경제 성장과 속도, 기업 이익과 효율성만 중시한 사회가 언제든 시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노동, 환경, 인권 등 분야를 가르지르며 터져 나오던 문제 중 2014년 세월호 사건은 가장 큰 사회적 충격을 가져다줬다. 속도만 강조하던 사회가 결국 미래 세대에게 커다란 죄를 지었다는 국민적 부채감이 사회를 짓눌렀다.

이런 과정에서 차츰 경제 성장 이외의 가치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부터는 인권, 환경, 삶의 질, 행복 등 다양한 가치들이 부상했다. 이 중 일부는 국가의 운영 목표에 반영되기도 했다. 2000년대의 ‘지속가능발전’, 2010년대의 ‘저탄소녹색성장’, ‘국민행복’, ‘경제민주화’ 등이 대표적이다. 일부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사회책임경영’(CSR)이라는 이름으로 기업 경영에 반영되기도 했다.

2019년, 문재인 정부는 개발국가 시대의 종언을 선언하고 ‘혁신적 포용국가’(성경륭, 2019)를 새로운 국가 체제로 제시했다. 우리 나라를 경제 성장과 효율성만이 아니라 환경, 인권, 노동, 등 다양한 가치를 포괄하는 국가로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림 1] 시대별 국가 운영 목표 및 지향 가치

1960~1990년대 ‘경제 성장 중심의 개발국가’와 2019년의 ‘혁신적 포용국가’의 차이는 단지 지향하는 가치의 다양성만이 아니다. 그 가치가 속하는(가치의 귀속) 대상, 즉 그 가치를 누리는 주체들의 범위가 다르다.

개발국가는 재벌 대기업 등 소수 계층에게 기회를 집중하고, 기존 시장 참여자들의 독과점을 묵인하는 모방형 성장 모델을 추구했다. 배제적으로 창출된 부가 낙수효과를 통해 사회 전체에 분배된다고 전제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 과실의 상당 부분은 소수 조직과 폐쇄적 집단에 귀속됐다.

반면 혁신적 포용국가는 다양한 계층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신규 참여자들이 혁신을 이끄는 선도적 방식의 ‘혁신성장’을 추구한다. 낙수효과를 기대하지 않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자원을 분배하는 ‘소득주도성장’을 추구한다. 이런 방향 하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가치들이 특정 개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개인, 나아가 사회 공동체와 미래 세대에까지 귀속되도록 한다.

[그림 2] 개발국가와 혁신적 포용국가의 특징 비교

이렇게 영역이 다양해지고 귀속 대상이 확대된 가치를 지칭하기 위한 개념이 ‘사회적 가치’다. 다시 말해 사회적 가치란, 경제·사회·환경 영역의 다양한 가치, 그리고 개인·사회 공동체·미래 세대를 함께 고려하는 행동 규범이자 의사 결정의 기준이다.

사회적 가치는 이미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속으로 들어와 있다. 최근 들어서는 ‘경제 성장 이외 다른 가치도 중요하다.’는 정도의 인식을 넘어서서, 성장 못지않게 분배를 중시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성장(경제 성장)과 분배[1]라는 가치에 대해 인식 조사[2]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27%만이 “성장이 분배보다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53%가 “성장과 분배 모두 중요하다”, 20%가 “분배가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림 3] 성장과 분배 가치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

이런 사회적 가치는 특히 공공기관에서 앞장서서 실현하려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공기관은 국가 정책의 실행 기구다. 정치적 과정으로 정당성을 얻고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방향을 잡은 정책이 실제로 집행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 집행 과정에서 공공기관이 내리는 수많은 의사 결정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게다가 공공기관의 위상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가장 뛰어난 인력들이 공공기관으로 몰리고 있다. 공공기관 임직원의 보수와 안정성이 민간 부문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 이전 이후 많은 지역에서 공공기관은 해당 지역에서 규모와 영향력이 가장 큰 기관에 들게 됐다. 이렇게 영향력과 자원이 있는 곳에서 새로운 가치를 전파해야 변화가 가능해진다.

국민들도 사회적 가치 확산 과정에서 정부 및 공공기관이 매우 큰 우선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LAB2050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진행한 조사[3] 결과, 사회적 가치의 우선 책임 주체가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이라는 답변이 전체의 34.4%로, 국회, 언론, 노동계, 기업 등을 앞서며 1위를 차지했다.

[그림 4] 사회적 가치 우선 책임 주체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가치’는 추상적 규범으로만 존재하고 현실의 작동 원리가 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개별 조직의 작동 및 운영 원리, 의사 결정의 기준으로까지 활용되고 있지 못 하기 때문이다. 민간 조직들에서도 필요한 일이지만 공공기관에서는 반드시 새로운 사회적 가치에 맞게 조직을 운영하고 사업을 펼쳐야 한다. 아직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일례로, 과거 경제적 가치만을 중시하던 시대에는 조직에서 ‘노동’을 비용으로만 여기는 것이 당연했다. 가치가 다원화된 현재에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인권, 삶의 질, 안전과 행복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공공기관에서는 2010년대 이후에도 노동 비용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비정규직 비율을 계속해서 높여왔다. 현 정부 들어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급히 실행해 오고 있지만 정부 지침에 따르는 모양새일 뿐 기관마다 추구하는 가치와 운영 원리가 변화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따라서, 사회적 가치가 단지 추상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고 사회 각 부문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조직들, 특히 공공기관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제적인 목표이자 운영 원리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기관에서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먼저 시작되어야 하며, 사회적 가치를 공공기관에 실제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사회적 가치의 핵심 범주와 실천 항목들을 알아보고 조직의 크고 작은 의사 결정마다 준거로 삼을 수 있도록 학습할 필요도 있다. 조직 경영과 업무, 사업 실행이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게 이뤄지도록 적절한 방법론들을 찾아서 적용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 보고서는 공공기관들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사회적 가치의 정의를 알아보고(2장),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그동안의 정책적 논의 및 실행 과정을 살펴본 뒤(3장), 공공기관에 사회적 가치를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4장)들을 제시할 것이다.

특히 이 보고서에서는 공공기관이 사회적 가치 중심의 운영을 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도구 두 가지를 새로 연구해 제안한다. 공공부문의 ‘사회적 가치 실현 시스템’(Social Value Management System)과 ‘공공부문 BSC’(Social BSC)가 그 두 가지다.

지금 한국 사회는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의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이론이나 방법, 문제의식 등의 체계다. 지동설이 진리로 받아들여지기 전, 모든 천문 현상은 천동설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설명됐다. 그러나 지동설이 받아들여지자 똑같은 현상들이 거꾸로 지동설의 관점에서 재해석되고 완벽하게 설명됐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경제 성장과 효율성의 절대성’이라는 지난 시대의 천동설에 도전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 지금부터 새롭게 정의하는 사회적 가치가 다음 세대 한국 사회의 패러다임이 될지 모른다.

다음 글 읽기: Part 2. 사회적 가치란?

전체 포스트

보고서 소개 및 목차

Part 1. 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인가?

Part 2. 사회적 가치란?

Part 3. 공공기관과 사회적 가치: 정책적 논의 및 적용

Part 4. 설립 목적 · 조직 운영 상의 사회적 가치 적용 방안

Part 5. 사회적 가치 실현 시스템과 공공 부문 BSC 모델

Part 6. 개별 공공기관 변화에서 정부 혁신으로

참고문헌 및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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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 정책실험실 Policy Lab for Next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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