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공공기관과 사회적 가치: 정책적 논의 및 적용
* LAB2050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 포용국가 시대의 조직 운영 원리’ 보고서의 온라인 버전입니다. 주석, 참고문헌 등은 별도 포스트(링크)와 PDF 버전(다운로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가. 그동안의 정책적 논의
공공기관은 법적으로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으나 광의로는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으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준정부기관까지 포함하는 행정의 주체다. 협의로는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운법)’에 따라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한 기관을 의미한다(김현희 · 박광동, 2018).
그 동안 공공기관들은 다양한 법제와 정부의 요구 사항에 맞춰 효율성과 효과성을 중시하는 전통적 행정론, 신공공관리론에 맞춰 조직을 운영해 왔다. 그 결과 민주성과 형평성 측면에 대해 소홀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며, 공공기관이 이 가치들을 회복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라영재, 2018).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가치를 ‘더불어 살아가야할 공동체 회복’을 위해 추구해야 할 핵심적 가치로 인식하고, 공공 부문이 선제적인 실행 주체가 되어야 함을 천명한바 있다(강정석 외, 2018). 이를 위해 공공기관의 존재 자체를 사회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는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강정석 외, 2018).
사회적 가치에 대한 정책적 논의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이었던 2014년 6월, 문재인 외 60여명의 국회의원이 공동 발의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이하 사회적 가치 기본법)’에서 출발한다.
사회적 가치 기본법(안)에서는 사회적 가치를 ‘사회·경제·환경·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로서 다음 각 목의 내용을 포괄한다’고 정의하며, 각 목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기본 권리로서 인권의 보호
- 재난과 사고로부터 안전한 근로·생활환경의 유지
- 건강한 생활이 가능한 보건복지의 제공
- 노동권의 보장과 근로조건의 향상
-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회 제공과 사회 통합
- 대기업, 중소기업 간의 상생과 협력
- 품위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
- 지역 사회 활성화와 공동체 복원
- 경제 활동을 통한 이익이 지역에 순환되는 지역 경제 공헌
- 윤리적 생산과 유통을 포함한 기업의 자발적인 사회적 책임 이행
- 환경의 지속가능성 보전
- 시민적 권리로서 민주적 의사 결정과 참여의 실현
- 그 밖에 공동체의 이익 실현과 공공성 강화
이 법안은 공공기관의 정책 수립 및 집행, 사업을 수행 과정 하는 데 있어 이윤과 효율만을 중시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우선 고려하도록 하는 내용이었으나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2016년 8월 김경수 국회의원(현 경남도지사)을 중심으로 법안이 재발의 되었으며, 2017년 10월에는 박광온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해당 법안의 수정안이 다시 한 번 발의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수정이 있었으나, 사회적 가치의 개념 및 포함 항목 등에 관한 주요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수정 발의된 사회적 가치 기본법(안) 제2조[4]는 ‘이 법은 사회적 가치가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중요한 가치임을 인식하고, 공공 부문에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선도함으로써,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공동체적 가치의 회복, 호혜 협력과 상생이 실현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정의한다.’라고 법안의 기본 이념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 기본법은 통과되지 못 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정부 운영을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담은 ‘정부혁신 종합 추진 계획’을 2018년 3월 발표했다.
공공기관 정책을 기획ㆍ조정 및 총괄한다는 면에서 사회적 가치 실현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부 기관인 기획재정부는 사회적 가치 실현 과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기획재정부, 2018)는 사회적 가치를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가치’로 인식하며, ‘사회적’이라는 말을 여럿이·함께(라틴어 Societas)와 공익적(Public)이라는 의미로 정의한다. 사회적 가치를 정부 국정 철학과 정부 운영의 핵심 원리로 제시하고 있으며,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정책 방향으로 아래와 같은 사항을 덧붙였다.
- 공공 부문 사회적 가치 실현 강화
- 사회적 가치 실현 법·제도 기반 구축
- 주요 정책에 사회적 가치 반영
-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
- 민간 부문에서의 사회적 가치 실현 활성화 지원
- 사회적경제 활성화 지원
-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지원
사회적 가치 기본법(안), 정부혁신 종합 추진 계획 상의 사회적 가치 실현 항목은 <그림8>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공공기관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48조에 따른 ‘경영 실적 평가 제도(이하 경영평가)’에 따라 매년 경영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 경영 평가 결과는 차등 성과급 지급 등에 직접 반영되므로 그 기준은 공공기관 운영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기존 평가 방식의 한계를 파악하고,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경영 평가를 대폭 개정했다. 주요 개정 사항은 아래와 같다.
[2018 공공기관 경영 평가 주요 개정 사항]
- 경영관리 항목 중 경영 효율 지표와 사회적 가치 지표 구분
- 사회적 가치 지표 배점 확대(공기업: 경영 관리 항목 55점 중 22점, 준정부기관 55점 중 20점)
- ‘삶의 질 제고’,’협력과 참여’ 항목과 같은 사회적 가치 구현과 관련된 지표 신설
- 주요 사업 항목 중 사회적 가치 실현 사업 평가 (공기업: 총 45점 중 10~15점, 준정부기관: 총 55점 중 30~35점)
나. 정책적 논의의 한계
사회적 가치 13대 항목(그림8)은 구성 상, 적용 상의 한계를 갖고 있다. 먼저 구성 상의 한계를 살펴보면, 사회적 가치 항목이 다루고 있는 범위 간의 수준 차이가 존재한다.
- 공공기관이 실천해야 하는 사회적 가치 유형을 포괄적 수준(핵심 주제)으로 제안할지, 세부적 요구 사항(세부 주제)까지 제안할지 정리돼 있지 않다.
- ‘인권보호’, ‘환경의 지속가능성 보존’ 등 포괄적 수준의 요구 사항과 ‘일자리 창출’, ‘대기업·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 ‘노동권 보장과 근로조건 향상’ 등 세부적 요구 사항이 병렬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 포괄적 요구 사항 하에 세부적 요구 사항까지 제시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이슈들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인권보호’라는 포괄적 요구 사항 하의 세부적 요구 사항으로는 성폭력, 종교 갈등, 사회적 약자 차별 등에 대한 이슈, ‘환경의 지속가능성 보전’이라는 요구 사항 하에는 ‘자원 고갈’, ‘기후변화’, ‘대기 오염’,’ 생태계 파괴’ 등과 이슈에 대한 세부적 요구 사항을 적시하는 식이다.
적용의 관점에서 보면, 각각에서 제시된 사회적 가치가 규범적으로 모호하고, 실행 방법도 구체적이지 않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들이 제시된 사회적 가치 항목 적용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조직에 유리한 형태로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작용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각각 유사한 항목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어 사회적 가치를 적용하고자 하는 조직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개선이 요구된다.
- 공공기관의 의사 결정 상황에 구체적인 지침으로 활용되려면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제시가 필요하다.
- 여러 항목이 나열될 때, 이를 모두 지켜야 하는지 혹은 그 중에 우선순위가 있는지 등에 대한 세부 지침이 필요하다.
경영평가도 ‘세부평가 항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바가 없음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림9 참조> 2017년 경영평가 기준의 ‘경영 기획 및 사회적 책임’, ‘정부 권장 정책’, ‘일자리 창출 가점 항목’이 2018년 경영평가 기준의 ‘2. 사회적 가치 구현’의 5대 지표로 바뀌었을 뿐이다.
신규 지표라고 소개되었던 ‘삶의 질 제고’와 ‘협력과 참여’ 지표는 기존 지표에서 명칭만 바뀌어 있다. 세부평가 항목의 재배열과 배점 조정 수준 정도의 변화만 있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가치 구현의 5대 지표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의 주요 지표로 충분한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주요 사업들에 대한 평가에서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였는가?’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여기에 많은 배점(공기업 45점 중 10~15점, 준정부기관 55점 중 30~35점)을 할당했다는 것은 상당한 변화다. 다만 해당 지표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것이 한계다.
주요 사업에서의 사회적 가치 실현 정도를 평가하고자 한다면, 사업 및 서비스 수혜자에 대한 다양한 고려 사항을 지표로 넣어야 한다. 공공기관이 주요 사업을 통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시민의 안전·보건이 보장’되는지, ‘모든 국민에게 필수 서비스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되는지’,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투명한 정보가 제공’되고 있는지 등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세심한 고려 사항을 반영하지 않고 단순히 지표의 명칭과 분류를 바꾸는 정도로는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다. 사회적 가치 범주 및 실천항목 재구성
사회적 가치가 공공기관의 운영에서 기준 및 지표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실증적 가치로 환산이 가능해야 한다. 다만 사회적 가치가 규범적 특성을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으며, 그 규범은 시대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시대의 보편적인 요구를 반영해서 가치의 영역과 귀속 대상이 확장돼 가는 방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그림10>과 같다.
가치 영역은 경제적 가치에서 사회적, 환경적 가치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가치 귀속 대상은 개인과 개별 조직에서 사회 공동체, 미래 세대로 확장되는 추세다. 과거에는 개인 및 조직들에게 경제적 이익이 돌아가는 것을 가장 중시하던 사회에서 공동체 전체가 향유하는 ‘사회의 질’, 미래 세대까지 고려하는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치의 확장 방향을 반영하고, 공공기관 운영에 적용하기 위한 실증적 지표라는 측면을 감안할 때 다음과 같이 사회적 가치의 7대 범주와 실천 항목[5]을 재구조화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본 연구에서 재구성 한 사회적 가치 7대 범주와 실천 항목(표1)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 사회적 가치 7대 범주
- 인권, 일, 환경, 운영, 공공서비스, 지역사회, 거버넌스 등 7개의 이슈로 구성
- 각 범주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운영될 수 있는 미래지향점을 포함시킨 형태
- 실천항목
- 조직이 이행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 실천 활동을 나열
- 각 이슈가 지향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점검해야 할 항목
- 적용 방법
- 조직은 모든 7대 범주를 고려해야 하며, 실천항목 적용은 조직 상황과 특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 실천 항목은 해당 조직에 맞게 재해석될 수 있음
- 활용 및 보완
- 주로 공공 부문(특히 공기업)에서의 적용을 가정하여 작성되었으나, 필요한 경우 민간 기업과 비영리 조직에서도 조정하여 활용할 수 있음
- 현 시대의 관점에서 작성되었으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에 맞춰 수정 및 보완될 수 있음
라. 사회적 가치 7대 범주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
본 연구에서 이상과 같이 정의하고 제안한 사회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7대 범주에 대해 일반 국민 인식 조사[6]를 수행했다. 조사 대상의 66.6%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7] 실현이 중요하다 (‘조금 중요하다’ +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각각의 사회적 가치 7대 범주가 정부와 공공기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질문한 결과, 모든 범주에 대해 조사 대상의 80% 이상이 중요하다(‘조금 중요하다’ + ’매우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그에 비해 각 범주에 대한 정부와 공공기관의 실현 노력 수준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됐다. 5점 척도에서 모든 항목이 3점대의 평가를 받았으며, 그 중에서 가장 높은 부문은 인권(3.33), 가장 낮은 부문은 공정운영(3.03)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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