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기회와 제약: 자유노동과 그 적들
* LAB2050 ‘국민기본소득제: 2021년부터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델 제안’ 보고서의 온라인 버전입니다. 주석, 참고문헌 등은 별도 포스트(링크)와 PDF 버전(다운로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장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자유노동의 긍정적인 잠재성 그 제약을 파악하기 위해 수행한 다음 연구를 요약한 것이다. <김현아 (2019), ‘자유노동이 온다: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포트폴리오 워크의 미래’, LAB2050 인사이트 2050–01.>
가. 자유노동의 정의
다음으로 짚어봐야 할 내용은 고용과 일에서의 급격한 변화다. 한국의 노동 시장은 1990년대 후반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가장 눈여겨 봐야 할 변화는 ‘자유노동’(free labor)이 늘어나면서 주목받고 있는 현상이다.
자유노동은 ‘고용주에게 종속되지 않는 계약 형태를 통해, 일하는 방식에 대한 높은 자율성과 통제권을 갖고, 서비스나 상품을 제공하여 소득을 얻는, 임시적 계약을 통해 수행되는 새로운 형태의 일’로 정의할 수 있다. 과거 프리랜서라고 불리기도 했던 사람들을 포함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적으로 정의된 ‘노동’은 고용주에 대한 높은 종속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종속되어 있어야 법적 보호도 받는다. 휴가나 임금이나 단체협상 등의 권리도 종속성이 있어야 주어진다. 종속된 노동자들은 결정권이 매우 작은 대신 경영 결과에 대한 책임이 없다. 종속받는 노동자는 지시 받는 대신 보호도 받는다.
자유노동은 이런 전통적인 일자리와 ‘종속성’에서 핵심적으로 구별된다. 자유노동 종사자에게는 고용주가 없다. 계약 대상이 있을 뿐이다. 일의 과정을 통제받지 않는다. 자율적으로 일하되 성과를 내놓으면 된다. 출퇴근 시간이나 정년도 없다.
과거에도 자본주의 체제에는 이런 노동 형태가 부수적으로 존재했다. 그런데 최근 자유노동이 더 주목받는 것은, 구조적으로 주된 노동의 형태 중 하나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의 새로운 노동을 일컫는 몇 가지 용어가 있다.
- 긱 노동: 특정한 작은 업무(task) 단위로 단기적 계약을 맺고 보상을 받는 형태의 일. 계약의 단위가 ‘작게 쪼개진 업무’이고 초단기라는 점을 강조한 분류
- 독립 노동(프리랜서 노동): 기업의 핵심적 업무를 외주용역 형태로 맡아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하는 것으로, 시간제나 일당 등의 형태로 보상을 받는 일.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보상을 받으며 핵심적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이 강조된 분류
- 클라우드 노동: 열린 플랫폼에서 다수가 프로젝트를 놓고 경쟁하며 참여하는 형태의 일.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상의 특징을 강조한 분류
새로운 노동에 대한 이런 정의들은 주로 계약의 기간이나 보상의 형태를 기준으로 수립되어 있다. 하지만 ‘자유노동’은 종속성을 기준으로 다시 정의한 개념이다. 일하는 사람 스스로 일하는 시간과 분량과 과정을 결정할 수 있느냐가 자유노동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핵심이다. 형식적 계약 형태보다는 실질적 내용을 중심으로 세운 개념이기도 하다.
일에 따른 보상이나 일할 기회를 얻는 과정은 사실 일 자체는 아니다. 핵심은 일 자체가 얼마나 자유롭게 조직되느냐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노동자는 자유로운 노동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한적 의미에서의 기업가이며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의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주체라고도 볼 수 있다.[8]
나. 확산
새로운 형태의 일이 늘어나는 경향은 세계적인 추세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McKinsey Global Institute)는 표준적 고용 관계와 다른 형태로 노무의 제공, 재화의 판매, 재화의 대여를 수행하되, 단기 계약을 맺고 대가를 지급받는 노동을 “독립 노동(Independent Work)”이라 정의했다.[9] 자유노동보다 조금 넓지만 유사한 개념이다. 연구소는 2016년 기준으로 미국과 유럽 6개국에서 어떤 형태로든 이러한 독립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체 근로 연령 인구의 20~30%, 약 1억 6000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미국의 클라우드 기반 회계 솔루션 기업 프레시북스(Fresh Books)는 미국에서 기존의 전통적 일터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다가 그 곳을 떠나 독립적으로 일하기 시작하는 사람이 2021년까지 2400만 명이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10] 또한 그 주력은 1980년대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세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업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가 다음 커리어를 선택할 때는 다른 곳에 취업하기보다는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독립적으로 일할 것이라는 전망[11]도 나온다.
유럽연합에서도 프리랜서가 노동자 가운데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고용 형태[12]라고 전망한다. 유럽연합 28개국의 프리랜서 숫자는 2000년부터 14년간 두 배로 늘었다. 프리랜서의 성장률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에서는 전체 일자리 성장률보다도 높다.
한국에서도 자유노동의 규모를 정확하게 추산한 통계는 아직 없다. 그러나 특수형태고용 종사자와 1인 자영업자, 프리랜서, 플랫폼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자유노동이 확대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점포를 운영하며 사업을 하는 전통적인 자영업자들이 장기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에도 자영업자 수가 일정한 규모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통계상 자영업자 중 일부는 꾸준히 자유노동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2011년 고용노동부의 조사에서 130만 명 규모였던 ‘특수형태고용 종사자’는 2018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 연구에서는 210만 명으로 늘었다. 또한 동일한 조사에서 집계한 1인 자영업자, 프리랜서, 플랫폼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까지 합쳐 보면, 전체 취업자(2,709만 명)의 17.3%(약470만 명)에 달한다.[13] 점포가 있고 보수를 스스로 정하는 등 1인 자영업자들을 ‘진성 1인 자영업자 또는 프리랜서’로 봤는데 이들은 248만여 명으로 추정됐다. 또한 이들보다는 종속성이 높으나 특수고용직보다는 종속성이 낮은 ‘새로운 유형’도 55만여 명인 것으로 추산됐는데, 이 ‘새로운 유형’은 플랫폼을 활용한 노동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됐다. 종합해 보면 한국에서 자유노동 종사자는 대체로 55만 명에서 248만 명 사이의 규모일 것으로 보이며, 이는 정책 대상이 되어야 하는 상당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자유노동이 확산되는 이유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디지털 기술이다. 대부분의 인구가 인터넷 및 모바일기술을 활용하게 되면서 디지털 플랫폼의 사용도 늘어났다. 디지털 플랫폼은 거래 편의성을 높이고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 기업과 개인들의 자유노동 거래를 촉진한다. ‘숨고’, ‘크몽’ 등이 대표적이다.
둘째, 노동 수요자인 기업 조직의 변화다. 생산 기술의 변화로 기업은 점점 더 ‘균열 일터’로 변화하고 있다. 대규모 고용을 통해 대부분의 기능을 기업 내부로 끌어들여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는 대기업 체제는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계약직 고용과 외주 하청화로 노동을 외부화 하다가, 이제는 플랫폼을 통해 노동을 확보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채택하는 데까지 와 있다. 점점 더 자유노동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셋째, 노동 공급자인 개인들의 문화적 변화다. 기업 조직의 위계 구조 아래서 일하는 대신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일하기를 선호하는 개인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기술 활용에 능하고 유연한 삶을 선호하며 독립적으로 일하기를 원한다. 이들이 자유노동 확산의 저변이다.
다. 잠재력과 제약
자유노동은 종속적 노동에 비해 혁신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LAB2050은 이런 잠재력을 찾기 위해 한국에서 자유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 9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잠재력을 찾기 위해 종속적 노동을 선호하지 않아 자발적으로 자유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로 인터뷰 대상을 좁혔다. 경제적 필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유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제외했다.
인터뷰 결과, 자유노동은 개인적 차원에서 볼 때 종속적 노동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일의 자율성이 주는 성취감이다. 성취감이 높으므로 일에 대한 몰입도와 책임감도 높아진다.
둘째, 노동 시간을 통제함에 따라 확보되는 높은 삶의 만족도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스스로가 정하기 때문에 최적의 삶을 설계할 수 있게 된다. 일과 삶의 균형이 업무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셋째, 스스로 학습 시간과 내용을 결정하고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종속적 노동을 할 때보다 더 큰 배움과 성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잠재력이 실제 발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현실적 여전히 제약도 크다는 사실이 인터뷰 결과 나타났다. 인터뷰 결과 자유노동을 제약하는 가장 큰 제약은 소득의 불안정성이었다.
근로계약에 따라 지급되는 임금과는 달리 자유노동에 따른 수입은 불안정하다. 대부분 고객과 단기 계약을 맺으며 초단기 노무 제공 또는 비교적 1년 미만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경우도 많다. 일거리와 소득이 한꺼번에 몰릴 때도, 아예 없을 때도 있다.
미국에도 소득 안정성이 문제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전통적 기업 재직자들 중 35%는 독립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소득이 불안정해질 수 있어서’라고 답했고, 27%는 ‘소득이 줄어들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14]. 30대 이하 밀레니얼 세대가 불안정성을 주로 걱정한 반면 40대는 소득이 줄어들 것을 주로 걱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노동을 꿈꾸지만, 소득 불안정은 자주 그 꿈을 초라한 몽상으로 만들고 만다.
라. 소득 보장의 잠재적 효과
소득이 보장된다면 자유노동에 뛰어든 사람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인터뷰 대상자들의 응답으로 볼 때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실험과 혁신이 늘어날 수 있다. 이들은 보장된 소득을 ‘투자’로 여기고, 당장의 생계비 걱정이 없다면 더 실험적으로 사업 운영을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둘째, 전반적인 업무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약간이라도 소득이 보장된다면, 학습에 시간을 투입해 성장의 기회를 가져 보겠다는 이야기다. 셋째, 사회적 가치를 목적으로 한 활동이 늘어날 수 있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수익 창출을 위해 사회적 가치를 포기해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며 독립적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보장된 소득이 있다면, 그 가치를 직접적으로 실현하는 활동이 더욱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유노동의 이런 효과가 나타나려면, 자유노동자들의 소득과 삶이 안정되어야 한다. 자유노동은 법적, 형식적 자유를 준다. 누구도 무엇을 하라고 시키고 옥죄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실질적 자유를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단기적으로 생계소득을 벌어야 하는 경제적 종속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경제적 종속을 넘어서야 자유노동의 원래 취지가 살아날 수 있다. 소득 보장과 평생 학습 등의 사회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소득 불안은 좀 더 넓게 보면 자유노동 활동 뿐 아니라 창업과 직업 전환 등 노동 시장에서의 새로운 시도와 이동을 가로막는 제약 조건이다. 산업의 전환과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장기적인 소득 안정성은 노동 시장에서 혁신이 일어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다음 글 읽기: Part 3. 해법: 왜 기본소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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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기회와 제약: 자유노동과 그 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