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소득제는 범복지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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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in readSep 9, 2020

[IDEA2050_035] 박기성 (성신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출처: 프리픽

* 박기성(노동이 살아야, 서울: 펜앤북스, 출판 예정)을 발췌해 기고한 글입니다.

안심소득제의 도입 내용

안심소득제는 연소득이 일정액에 미달하는 가구에 미달 소득의 일정 비율을 지원하는 제도다. 구체적인 도입 방안은 4인 가구 기준으로 연소득 6,000만원에 미달하는 가구에 [(6,000만원- 가구 연소득) × 50%]를 현금으로 지원하고, 그 이상의 소득 가구에 대해서는 비과세 및 감면, 공제 등 현행 소득세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2020년 4인 가구의 기준중위소득은 연 5,699만원이므로 2022년 하반기나 2023년에 안심소득제가 시행된다면 연소득 6,000만원은 이때 4인 가구(이하 기준) 중위소득 수준일 것이다.

안심소득제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주거・자활급여 및 국세청의 근로・자녀장려금 만을 대체하고, 현재의 다른 모든 복지・노동제도는 존치되는 것으로 설계됐다. 예를 들어 기초연금, 실업급여, 아동・육아수당, 장애인연금, 교육・의료・해산・장제 급여 등 모든 현금성 복지 지출이 그대로 유지된다. 소득이 전혀 없는 가구는 연 3,000만원을 지원받고, 소득이 월 200만원, 연 2,400만원인 가구는 월 150만원, 연 1,800만원(=[0.5 × (6,000만원 — 2,400만원)])을 지원받게 되어 처분가능소득이 월 350만원, 연 4,200만원이 된다.

현행 제도의 복지 함정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소득이 전혀 없는 가구는 생계급여로 월 142만원, 연 1,710만원을 받고, 주거급여(서울 거주)로 월 42만원, 연 498만원을 받아서, 처분가능소득은 월 184만원, 연 2,208만원이 된다. 이 가구의 구성원이 월급 200만원을 받는 직장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과연 이를 받아들일까?

이 일을 하면 연봉은 2,400만원이지만, 그 70%인 연 1,680만원의 소득인정액이 생겨 그만큼 생계급여가 줄어들고, 국세청으로부터는 연 190만원(맞벌이 가구)이나 98만원(홑벌이 가구)을 받는다. 결국 이 일을 함으로써 증가하는 처분가능소득은 연 910만원(맞벌이 가구)이나 818만원(홑벌이 가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감안하면 일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근로장려금 제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저소득 취약계층은 기회가 있어도 일을 하지 않거나, 일을 하더라도 국세청이 알 수 없는 음성적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안심소득제를 통한 복지 함정의 해결

생계급여제도가 없어지고 안심소득제가 시행되면 위 가구의 구성원이 월급 200만원을 받는 이 일을 할까? 이 일을 하면 연 2,400만원의 근로소득이 생기고 안심소득제로 국가로부터 1,800만원을 추가적으로 지원받게 되어 처분가능소득은 연 4,200만원이 된다. 그러므로 이 일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또한 정부 입장에서도 예산 부담이 줄어든다. 현행 제도에서는 이 가구가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면 생계 및 주거급여로 연 2,208만원을 지원하게 되지만, 안심소득제가 시행되어 이 가구가 이 일을 하면 연 1,800만원의 지원을 하게 된다.지원액이 408만원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안심소득제가 시행되면 이와 같이 현행 제도보다 더 강한 근로 유인을 제공하여 노동공급이 증가해 국내총생산 증가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가구의 노동소득 증대로 국가의 지원액도 감소할 것이다. 그리고 저소득 취약 계층의 처분가능소득을 획기적으로 늘려서 생계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안심소득제를 통한 소득 격차 완화와 노동 공급 증대

안심소득제는 연 6,000만원 미만 소득 가구에 소득이 낮을수록 많이 지원되므로 소득 격차를 현저히 줄인다. 2015년 한국의 지니계수는 0.295로 35개 OECD 회원국 중 20위였고 소득5분위 배율은 5.1로 17위였다. 안심소득제가 시행되면 이 수치가 각각 0.039(13%)와 1.38(27%)씩 낮아져 0.256과 3.72가 된다. 지니계수는 33위, 소득5분위 배율은 29위가 되어 소득 격차가 크게 완화될 것이다.

2020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8,590원이다. 여기에 월 근로시간 209(시간)를 곱하면(유급 휴일 포함) 월 급여는 180만원이고 연봉으로는 2,154만원이다. 4인 가구에 최저임금 이외의 소득이 없고 이 금액이 모두 실제 소득액이라고 하자. 소득인정액은 이 금액의 70%이므로 1,508만원이다.
생계급여는 이 금액과 1,710만원과의 차액이므로 연 202만원이 되고, 주거급여로 연 498만원을 받는다. 근로장려금으로 맞벌이 가구는 229만원, 홑벌이 가구는 138만원을 받게 되어서, 처분가능소득은 각각 연 3,083만원(월 257만원), 연 2,992만원(월 249만)이 된다.

반면, 안심소득제가 시행된다면 연봉 2,154만원에 추가해 1,923만원(=[0.5 × (6,000만원 — 2,154만원)])을 지원받게 되어 같은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연 4,077만원(월 340만원)이 된다. 이는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원으로 인상할 경우의 연봉 2,508만원(월 209만원)보다 훨씬 많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은 심각한 고용 감소를 초래하고, 자원 배분의 비효율을 증가시켜 경제성장률을 하락시킨다. 안심소득제가 시행되면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인상하지 않아도 저소득 가구를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고, 최저임금의 고용 감소 및 경제성장률 하락 효과 대신에 노동 공급 증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안심소득제를 통한 행정 비용 감소 효과

안심소득제의 중요한 또 다른 이점은 복지 관련 행정 비용을 절약하고 예산이 새나가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계・주거・자활 급여와 관련하여 수급권자 및 부양의무자를 판정하기 위한 각종 조사와 수급자 관리, 자활사업 관리 등 여러 행정비용을 절약할 수 있으며, 복지 혜택 전달 과정에서 생기는 각종 비리 등의 누수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안심소득제는 기존의 소득세를 부과・징수하는 국세청 자료와 행정 조직을 이용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행정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으며, 세금 징수 과정에 수반되는 정도의 누수만이 발생할 것이다. 담당하는 행정 조직도 보건복지부의 사회복지정책실의 대부분이 국세청의 소득지원국으로 통폐합되는 등의 방식으로 축소될 것이다.

안심소득제 시행을 위해 필요한 재원

안심소득제의 시행을 위해서는 2019년 42조원의 추가적인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현금성 복지 지출이 2020년 73조4,000억원으로 급증해서, 추가적으로 필요한 예산은 34조원으로 감소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중앙정부의 복지・보건・노동 예산이 매년 12%씩 증가해 왔다.
이 증가율대로 늘어나면 2020년 대비 2023년에 73조원이나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안심소득제가 2022년 하반기나 2023년에 시행된다면 연 34조원의 추가 예산을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 국세청은 소득세를 매월 임금에서 원천 징수하고 연말에 정산하듯이, 안심소득 지원 대상자에게 소득을 매월 지원하고 연말에 정산할 수 있을 것이다.

안심소득제와 기본소득제의 비교

안심소득제에 드는 동일한 예산을 모든 국민에게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균등하게 나누어주는 기본소득제를 실시할 경우, 소득 격차 및 양극화를 완화하는 효과는 미미하다. 이는 기본소득제 하에서는 소득과 무관하게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금액을 분배하므로 소득의 상대적 분포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주어진 예산을 갖고 저소득 취약 계층을 효율적으로 돕는 방법은 이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각각의 소득 수준을 고려하여 지원하는 안심소득제다.

다수 국민들에게 재산, 소득, 근로 여부와 관계없이 일정 소득을 보장하자는 기본소득제는, 실업급여 등 기존의 사회보장 혜택을 대체하고 사회보장제도를 단순화하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핀란드 등에서 실험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기존 복지제도에 더해서 모든 국민에게 추가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다른 형태의 기본소득제가 논의되고 있다.

기본소득제에 비해 안심소득제가 갖는 장점들

소득 수준에 따라 지원 금액이 정해지는 안심소득제와 달리, 기본소득제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의미있는 지원을 위해서는 상당한 규모의 재원을 필요로 한다. 저출산, 고령화 등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저소득 취약 계층을 어떤 방법을 통해 효율적으로 도와줄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더욱 중요해진다. 제한된 예산 안에서 소득 격차 완화 효과가 훨씬 큰 안심소득제가 기본소득제보다 더 효율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기본소득제와 안심소득제 모두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제도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안심소득제의 단순함은 제도적 원리의 단순성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기본소득제의 단순함은 획일성에서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획일성은 경제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제도적 경직성을 불러올 것이다.

주요 기본소득 도입 방안의 한계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종국적으로 매월 50만원(실질 가치)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를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4인 가구 기준으로 연 2,400만원의 불로소득이 생기는 것이고, 이자율이 연 1%라면 24억원의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같다. 이 24억원의 로또에 당첨된 국민들은 일을 덜하거나 안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즉, 노동공급을 크게 감소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소득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연 312조원의 예산(올해 중앙정부 본예산의 61%)이 필요한데, 이재명 지사는 국토보유세를 신설해서 이 엄청난 예산을 충당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부동산 관련 보유세・거래세・양도소득세의 합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한국이 이미 OECD 국가들 중에서 최상위권으로 국토보유세의 신설을 감당할 여력이 없고, 땅에 대한 과세는 건물 공간에 대한 과세로 건물 공간의 공급을 감소시킨다.

이재명 지사는 또 기본소득을 지역 화폐로 지급할 것을 주장한다. 기본소득이든 안심소득이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로 지급되면, 예를 들어 저축해서 대학이나 대학원 등록금으로 사용하여 인적자본을 축적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지만, 지역 화폐로 지급되면 이런 투자가 불가능해진다. 이것은 소비와 투자를 유효 수요라는 측면에서 동일시하는 케인지언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는 미래의 생산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소비와 구별된다.

LAB2050은 연 187조원(올해 중앙정부 본예산의 37%)의 재원이 조달 가능하므로 당장 국민 1인당 연 360만원(월 3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를 시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안에 따르면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 기존 복지제도들을 폐지하고, 소득세제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비과세와 감면제도를 없애면서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저소득층은 복지 혜택이 줄어들어서 반발할 것이고, 월급 생활자로 대표되는 중산층도 소득세제 상의 혜택이 줄어들어서 호응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1960년대에 밀턴 프리드먼 교수가 제안한 음소득세(negative income tax)가 채택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기존 복지제도 및 비과세 및 감면제도 등을 폐지하면서 음소득세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으나, 저소득층 및 중산층의 반발 때문에 채택되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안심소득제를 제안하는 것이다.

안심소득제는 기존 사각 지대를 없애고 ‘더’ 채워주는 ‘범’복지제도

안심소득제는 대부분의 현금성 복지・노동제도를 존치하고, 생계・주거・자활급여와 근로・자녀장려금을 대체하면서 확대・개편하는 것이다. 또한 비과세 및 감면, 공제 등 현행 소득세제를 그대로 유지한다. 그리고 기존 복지・노동 제도들의 까다로운 적격성 심사 대신에 주로 소득에 의해서 지원 여부 및 지원액이 결정되므로, 서울 송파구 세모녀 사건과 같은 안타까운 일들을 방지할 수 있다.

누구나 실직을 하거나 사업에 실패하면 살아갈 길이 막막한 곤궁에 처할 수 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처했을 때 안심소득제는 생계를 영위할 수 있는 금액을 지원하는 최후의 보루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안심소득제(Safety Income System)는 기존 복지제도의 사각 지대를 없애고, 더 채워주는 범(汎)복지제도(Pan-Welfare System)이다. 현 정부가 진정으로 소득 격차를 축소하고, 복지국가로 가기를 원한다면 안심소득제를 실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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