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의 점진적 확대 방안: 경기도 기본소득 로드맵

[IDEA2050_31] 유영성 (경기연구원 기본소득연구단장 /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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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in readAug 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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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리픽

기본소득을 개념적으로 5가지 구성원칙을 포함하고 있고, 우리 모두의 공유부에 권리적 근거를 지니며, 더 나아가 우리 개개인의 실질적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경제적(화폐적) 수단이라고 이해하면 그동안의 기본소득 논의의 핵심을 큰 무리 없이 헤아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기에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적 측면, 재산권(소유권)이라는 권리의 측면, 경제 및 복지의 유지와 증진이라는 정책적 측면이 망라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기본소득의 현실에서의 실현은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측면에서의 문제 인식과 해답을 요구한다. 한마디로 간단치 않다는 말이다. 특히 기본소득의 이상적인 모형이 현실이라는 우리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때 그 순수한 원형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실제 실행 가능한 것인지도 다각도로 검토해 봐야 한다. 또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하며, 무엇을 달성하려고 하는지도, 더 나아가 즉각적으로 시행할 것이 나은지, 아니면 점진적으로 확대해 가는 것이 나은지도 우리가 고민해야 할 중요한 전략적 요소이기도 하다.

완전기본소득과 녹록지 않은 현실

기본소득을 현실에서 실행할 때 즉각적으로 할지, 점진적으로 할지를 결정하는데,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 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어떤 모형을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특히 기본소득의 구성 원칙을 놓고 얘기하는 것이 모형 구상의 출발점으로서 좋다. 구성 원칙은 보통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에서 합의한 다섯 가지(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정기성, 현금성)를 말하는데 여기에 충분성 원칙까지 포함해 논의해도 무방하다.

소위 완전기본소득(모든 원칙을 다 구비하고 충족하는 상태)이라는 모형이 있다고 하자. 당장에 이것을 실시하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이 원칙들을 다 지키려면 일단 막대한 돈이 소요된다. 그 많은 돈을 어디서 조달할 것이며, 만일 세금을 올려서 해결하는 것이라면 당장에 무수한 사람들의 이해관계 대립과 입장 차이 때문에 큰 저항을 받게 된다. 당장에 기획재정부 장관만 해도 2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고 하니 3불가론을 펴지 않는가. 현실은 이런 것이다.

기본소득 구성 요소의 우선 순위: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

현실적 이유에 의해 완전기본소득에서 다소 후퇴하여 불완전기본소득 혹은 변형기본소득 모형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으로서 본질적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고, 즉 기본소득으로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원형적 요소를 건드리지 않고, 그 이외의 요소들에 변형적 특징을 가미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기에 그렇다. 또 이런 것들을 세상에 내놓고 재정적, 정치적, 행정적 실행가능성을 충분히 높일 수 있다면 한번 해볼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수용불가능한 원형적 요소는 무엇일까? 제1원칙으로서 무조건성이라 할 것이다. 제2원칙으로 필수 원칙에 속하는 보편성과 개별성도 변형을 수용하기 어려운 요소들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사회구성체 전체를 다 포괄할 수 없는 현실적 여건에 처할 때 보편성을 범주 범위 내 보편성으로 축소할 여지는 있다 할 것이다. 어차피 완전기본소득이 아닌 불완전기본소득으로서 현실 적용 모형을 논하는 차원이기도 하고 그나마 기본소득의 원칙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할 때 이런 입장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점차로 대상 범주를 넓혀 간다는 입장을 견지한다면 좋은 전략적 행보가 될 수도 있다.

이제 기본소득의 구성원칙과 관련하여 무조건성, 범주보편성, 개별성을 지키고, 그 다음으로 정기성이나 현금성은 유연하게 간다고 할 때, 일단 우리는 기본소득의 구성 원칙 차원에서 현실적으로 변형을 가해도 될만한 기본소득 모형을 도출해 낸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충분성이다. 충분성이 합의된 구성 원칙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논란이 되는 주제이니만큼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도대체 얼마만큼의 소득이 기본 수준의 소득인가’라는 질문과 관련해서 충분성은 좀 더 깊이 있게 논의해야만 할 주제이기도 하다.

‘기본 수준’은 얼마면 될까?: 복지적 관점과 경제적 관점

기본소득이 기본 수준의 소득이라고 할 때 그 ‘기본 수준’은 얼마면 되는가? 필리프 판 파레이스의 말대로 우리들의 삶이 경제적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말은 좋지만 막연하다.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수준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기준을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설정해 보는 것이 좀 더 구체적이고 손에 잘 잡힌다.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잡으면 그 수준이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돈으로 환산되는 소득인지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기준선에 맞춰 충분한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다분히 복지적 관점의 접근법이다. 이것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한 면에 초점을 두고 얘기를 풀어간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이 본질적으로 최저층의 복지를 해결해 주자고 나온 사상은 아니기에 그렇다.

한편, 원래 기본소득은 우리의 공통 재산에 대한 지분 내지 수익의 일부를 권리로 받는 것인 만큼 그 받는 수준이 우리들의 경제적 자유를 반드시 보장하여야 한다는 규범적 명분은 없다. 받고 보니 우리들의 최저생계비 수준을 넘는 소득액이라면 좋은 것이고, 설혹 그것보다 못한 수준의 소득액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조차도 의미는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받는 소득 규모가 푼돈이든 빵값 수준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다만 우리가 권리를 지니는, 우리의 공유재산에 대한 지분 내지 수익의 일부가 어느 정도인지를 추정하는 작업은 필요할 것이다. 이는 충분성 기준이 아닌 적정성 기준에 해당한다. 다분히 권리의 가치에 대한 경제적 관점의 접근법으로서 최적성(optimum)을 찾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적정성과 충분성 기준의 혼합

이제 ‘도대체 얼마만큼의 소득이 기본 수준의 소득인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되돌아가 보자. 그 답은 기본소득의 ‘기본 수준’은 적정성 기준과 충분성 기준의 혼합 속에서 찾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적정성 기준을 적용하여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기본소득 규모를 찾아내고, 그 다음에 상황에 따라서 충분성 기준을 적용하면 된다.

적정성 적용으로 찾아낸 기본소득 규모가 우리의 생계비를 충당하고도 남는 수준이라면 그 다음부터는 굳이 복지적 관점의 충분성은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나, 만약 우리의 최저생계비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충분한 수준에 대한 얘기를 다시 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에서는 이러한 충분성 조차도 기본소득의 구성요건에서 제외하고 있으니 논의는 미궁으로 빠져들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빠져나갈 길은 있다. ‘완전기본소득’이 아니라 ‘부분기본소득’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다. 충분하지 못하지만 기본소득의 모델 중 하나의 구성요소로서 ‘부분 충분성’을 다루면 되기에 그렇다. 이로부터 우리가 현실에 적용할 기본소득 모형은 적정성과 충분성을 혼합한 것이라는 타협책을 내놓을 수 있을 것같다.

적정성을 기준으로 한 기본소득 도입 방안

이 주제는 기본소득을 전체 국민에게 내지는 특정 사회구성체,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 전체 시민에게 다 지급하는 사업을 일거에 실시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기본소득의 소득 수준을 적정성 기준에 입각해서 판단한다고 할 때 그 수준의 크기와 무관하게 그 수준만 측정해 낼 수 있다면 일시에 전체 국민이든 다른 사회구성체 전원에게든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문제가 될게 없다. 이 자체로 완전기본소득의 실현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달리 점진적 이행 내지 확대 전략을 짤 필요도 없다.

물론 이러한 방식으로 적정 규모를 추정했더라도 이를 걷는 것은 제도적 뒷받침이나 사회적 동의를 얻어내는 일 등의 커다란 문제가 앞에 놓이는 만큼, 별도의 전략적 이행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마땅하다. 다만 그 규모가 크고 작은 문제로 인해 완전기본소득의 실현에 장애는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런 적정성 기준에 입각한 기본소득 수준과 규모, 그리고 이의 실행에 대한 논의는 잘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다.

충분성을 기준으로한 기본소득 도입

반드시 명시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본소득의 지급 수준을 놓고 충분성 기준을 적용하면서 뒤따라 오는 문제를 피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그 실행 로드맵을 점진적으로 가져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는 아직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고 국민들의 동의를 받으면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 그럴 것이다.

충분성 기준을 적용하여 최저생계비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달리 말해 그만큼 지급 규모가 크면 조달해야 할 재원도 커지고, 또 조달 방식이 다분히 기존 소득세나 법인세의 증세 내지 신규 세목 발굴 등, 세제 개편을 동반하여야 하는데, 여기에는 조세 저항 등 정치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적 여건 하에 기본소득을 실행해 가는 최선의 방법은 대체로 세 가지가 있을 것 같다. 첫째, 기본소득 지급 규모를 작게 잡고, 작은 부분충분성을 달성하는 수준에서 시작하면서 점차로 지급 수준을 크게 가져가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다. 둘째,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대상의 규모를 작게 잡아 시작하고 나중에 점차 확대해 가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셋째, 아예 이 둘을 적당히 섞어서 전체적으로 작은 규모에서 점차 큰 규모로 이행해 가는 것이다.

정책실험을 통한 기본소득 도입

지금까지 기본소득 지급을 실행한다는 전제하에서 논의하였다. 하지만 반드시 실행을 전제할 필요는 없다. 실행 이전에 실험을 하는 것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의 실시에 따른 그 효과의 방향은 사전적으로 확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정책의 본격적 시행에 앞서 실험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다만 경기도는 이러한 실험 방식을 택하기보다 성남시에서의 청년배당 사업 실행을 실험의 일종으로 보고 직접 실행에 들어가는 수순을 밟았다고 할 수 있다.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정책의 실행이 그렇고,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지급 사업이 그렇다. 그뿐만 아니라 경기도 농민기본소득 사업도 직접 실행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실험 방식을 완전히 거부하고 있지는 않다. 경기도는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을 실시하기 위해 준비 중에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기본소득 도입 전략

경기도가 채택한 청년기본소득은 부분충분성을 충족한다고 할 것이다. 대상도 만24세 청년에 한정하고 있다. 범주보편성과 부분충분성을, 거기다 1년에 4회 지급하는 협소한 의미의 정기성을, 그뿐만 아니라 현금이 아닌 지역화폐로 지급하여 준현금성을 곁들이고 있다. 비단 지급 금액의 수준과 지급대상의 규모에만 국한해서 판단해 이것이 점진적 이행적 확대 전략의 일환이라고 보기엔 변형이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을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가 실행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조건들을 고려할 때, 경기도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취사 선택을 하는 것밖에는 없다. 따라서 기본소득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무조건성을 살리면서 대상을 특정 연령으로 제한하여 보편성을 수정하였던 것에 초점을 맞춰 바라볼 필요는 있다. 정치적 실현가능성을 고려해 이러한 전략을 취했다고 보이며 경기도라는 지자체 입장에서 이것이 최선이었다 할 것이다.

야니크 반더보르트 생루이 브뤼셀대 교수가 2019 사회보장 국제학술대회(2019년 12월 5일)에서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을 지목하며 범주형 기본소득 형태 아래 점진적 기본소득 도입이 유효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경기도의 전국민 기본소득 실행에 대한 입장도 이러한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인다. 즉, 단계별로 기본소득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는 재원 조달과 맞물려 현실 실행력을 높여가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된다. 재원 조달은 가능한 규모와 실현 가능한 시기가 있는 만큼 이에 맞춘 기본소득 집행 수준과 시기를 정해서 가는 로드맵을 갖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아래 표와 같은 로드맵을 하나의 안으로 제시해 볼 수 있다.

기본소득 정책에 대한 경기도의 전략적 입장은 기본소득 지급액 수준과 지급 대상 규모에서 점진적, 단계적 이행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업 실시는 점진적이기보다 즉각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것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는 사후 정책 평가를 거쳐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현실 실행 모형을 착안하고 이의 실행에 있어서 정치 지도자의 판단과 의지가 크게 작용한 사안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한국 사회 기본소득 도입 전략 연속 세미나(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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