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맞춤형 전국민 기본소득과 조세-급여 개혁

[IDEA2050_034] 유종성 (가천대학교 가천리버럴아츠칼리지 교수)

LAB2050
LAB2050
12 min readAug 26, 2020

--

출처: 프리픽

문재인 정부 ‘생애맞춤형 기본소득 보장제’ 공약의 명과 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생애맞춤형 기본소득 보장제’ 실시를 공약한 바 있다. 아동수당을 제외하면 청년구직수당, 출산지원금, 기초연금 확대 등 내용상 기본소득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공약이었지만, 어느 정도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그동안 중앙정부가 만 7세 미만에 대해 월 10만원의 보편적 아동수당을 도입한 것 이외에 경기도에서 작은 금액이긴 하지만 만24세 청년에 국한해 연 100만원(25만원×4회)의 청년기본소득을 실시하고 있고, 참여소득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 농민수당이 여러 지방정부에서 도입되고 있다. 또,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가구 단위이긴 하지만 전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하여 기본소득의 맛을 보여줬다.

비록 문재인 정부의 ‘생애맞춤형 기본소득 보장제’ 공약이 명과 실이 일치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향후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놓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이다. 특히 아동수당과 재난지원금이 우여곡절을 겪어 보편적 지급으로 결론을 맺게 된 경험과 함께 ‘생애맞춤형’이란 개념은 향후 ‘전국민 기본소득’ 논의에 있어 중요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과 복지국가 원리의 차이점

기본소득은 토지, 환경 등 공유 자원으로부터의 수익을 모두가 평등하게 나누어 가질 권리가 있다는 공유부 배당의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이 ‘평등’ 배당의 강조가 욕구 또는 필요(needs)와 사회적 위험(social risks)에 따른 급여를 기조로 하는 복지국가의 원리에 반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복지국가 원리에는 필요와 함께 권리도 중요한 양대 축의 하나이며, 우리 헌법도 사회적 기본권을 인정하고 있다. 실질적 자유의 실현, 또는 인간다운 생활을 모두가 보장받을 기본적 권리에 근거해서 최소한의 소득 보장을 위한 기본소득이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필요·욕구와 사회적 위험에 따른 복지급여와 기본소득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자는 필요·욕구(빈곤, 장애 등)가 있는지 또는 사회적 위험(실직, 질병, 산재, 은퇴 등)에 빠졌는지에 대한 심사가 요구되는 반면 후자는 자산 조사나 급여 자격 조사의 필요가 없이 공동체의 모든 성원(국민 또는 영주권자)에게 기본권으로 부여한다는 것이다.

지급액 수준을 달리한 생애맞춤형 전국민 기본소득

그러나, 기본소득을 모든 국민에게 반드시 똑 같은 금액으로 지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즉, 연령에 따른 필요·욕구와 사회적 위험성의 일반적인 차이를 고려하여 지급액의 수준을 달리 하는 것은 평등 배당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 또, 기본소득 외에 장애인연금 등 필요·욕구에 따른 공적부조는 계속 유지해야 하며, 기본소득이 충분한 수준에 이르기 전에는 빈곤층을 위한 기초생활보장 급여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가령 GDP 10% 규모의 전국민 기본소득을 실현한다고 할 때, 아동부터 노인까지 모든 개인에게 월 30만원을 일률적으로 지급할 수도 있지만, 아동보다는 성인에게, 성인보다는 노인에게 일반적으로 더 많은 필요와 위험성이 인정된다면 연령대에 따라 차등 지급을 할 수 있다. 아동 중에서도 영유아에게 더 큰 금액을, 성인 중에서도 노동시장 진입 초기에 불안정성이 높은 청년과 은퇴 후 어려움을 겪는 60대 초반에게 더 큰 금액을, 노인(65세 이상) 중에서도 근로소득을 올리기가 거의 어렵고 질병 위험도가 더 높은 75세 이상 노인에게 더 큰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 타당하다.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로 가구주 연령별 가구소득을 보면, 30세 미만의 청년 가구주와 60세 이상의 노인 가구주의 경우 가구소득이 30~50대 가구주에 비해 현저하게 낮으며, 노인 가운데서도 연령에 따른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

연령대별 차등지급 방안

보다 구체적으로, 가령 6~18세 의 아동과 30~59세의 성인에게는 20만원, 0~5세 유아와 19~29세 청년 및 60~64세는 30만원, 65~74세는 40만원, 75세 이상은 50만원 수준(2020년 가격 기준)으로 차등을 둘 수 있다. 이처럼 연령별 차등지급시 소요재정(2023년, 167.5조원으로 GDP 9% 이내)은 전국민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할 때(2023년, 186.7조원)보다 작으며 통계청의 장래인구 특별추계에 따라 2067년까지 추계를 해봐도 소요재정이 안정적이다.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각각 소요재정의 증가와 감소를 초래하여 2040년에 186.1조원으로 최고에 달했다가 이후 조금씩 감소한다 (경제 성장과 물가 상승에 따라 지급액은 점차 인상될 수 있다. 만일 GDP 15% 수준으로 기본소득을 확대한다면, 지급액은 더 커질 것이다). 이는 생애맞춤형 전국민기본소득제가 장기적으로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유종성, 2020).

30~59세의 성인에게 월 20만원이 무슨 큰 도움이 되겠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회보장 사각지대에 있는 많은 빈곤층에게는 작은 금액이라도 정기적 수입이 상당한 도움이 된다. 송파 세 모녀 사건 같은 비극은 3인 가구 월 60만원의 기본소득으로도 방지할 수 있다. 실직시 고용보험 실업급여나 실업부조를 못 받거나 부족한 경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월 20만원을 저축하면 매 10년마다 1년간 월 200만원의 안식년을 갖고 재충전 할 수도 있고, 부부가 20~30년간 모으면 사업 자금이나 주택 구입에 쓸 수도 있다. 아마 금융기관들은 여러가지 저축상품을 만들어 고객을 유치할 것이다. 저축을 장려하려면, 기본소득 지급시 기본적으로 저축을 선택하게 하고 각자가 필요할 때 인출하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

늘어나는 사회보장 재정 어떻게 써야할까?: 기존 제도와 기본소득 선택의 기로

한국은 복지지출 규모가 OECD 평균의 절반으로 작은 편이지만 인구의 고령화 흐름에 따라 장차 OECD 평균을 넘어 복지 선진국 수준으로 커질 전망이다. 그러나, 소득재분배 효과는 OECD 최하위권이다.

고용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고용보험과 공적연금이 비교적 안정적 고용과 고소득을 누리는 정규직은 잘 보호하지만, 가장 보호를 필요로 하는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들은 잘 보호하지 못한다. 즉,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사회보장제도가 해소하지 못하고 오히려 강화하는 것이다(유종성, “복지 원리와 현실의 괴리: 이중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강화하는 이중 사회보장”). 한편 빈곤층을 위한 기초생활보장은 수급률이 20~30%에 불과하니, 운좋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다수가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셈이다.

한국의 복지지출 규모가 1990년 GDP 2.7%에서 2018년 GDP 11.1%로 팽창해왔는데, 사각지대가 크고 재분배효과가 낮은 현 사회보장제도를 그대로 유지해도 2060년에는 사회보장 재정이 GDP 28.2%로 현재보다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7%p 정도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처럼 늘어날 복지재정을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강화하고 세대간 세대 내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기존 사회보장에 쓸 것이냐, 이중 적어도 GDP 10%에 해당하는 부분은 기본소득에 사용할 것이냐의 선택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사회보장 개혁의 기본 방향

따라서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GDP 10% 이상의 ‘생애맞춤형 전국민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여 재정적 지속가능성과 함께 세대간·세대내 형평성을 동시에 도모해야 한다. 사회보장 개혁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자면 소득 재분배 기능은 기본소득과 공적부조에 맡기고 고용보험과 공적연금은 소득비례의 ‘소득보험’ 형태로 개편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소득 수준을 올릴수록 공적부조는 점차 대체하여 그 비중을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GDP 10% 정도의 기본소득 재원 마련은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5년 내지 10년 이내에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기본소득은 복지 증세를 보다 용이하고 빠르게 할 것이다. 정률세-정액지급 기본소득(basic income-flat tax)은 중위 소득자를 포함해 평균 소득자 이하는 모두 순수혜자가 되며, 누진세에 기반한 기본소득은 평균 소득자 이상까지도 순수혜자가 되기 때문에 정치적 지지와 지속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GDP 10%~15%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한 구체적 방안

(1) 기존 재정 지출구조 개혁

GDP 10%~15%의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들면, 첫째 기존 재정 지출구조의 개혁으로 GDP 5%를 마련할 수 있다. 한국은 공공사회지출(GDP 10.2%)이 광의의 조세부담(사회보장기여금 포함, GDP 25.2%)에서 차지하는 비중(2015년, 40.6%)이 OECD 평균(60.8%)의 2/3에 불과하다. 프랑스, 핀란드, 미국, 일본,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이 비율이 70% 내외에 달한다. 5년 내지 10년 계획으로 재정 지출구조 개혁을 하면 조세부담률을 올리지 않아도 GDP 5% 규모의 재원이 마련된다.

특히, 재정의 자연증가분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17년 정부 본예산이 400조원이었는데, 문재인 정부 3년간 약간의 핀셋 증세밖에 하지 않았음에도 2020년 본예산은 512조원으로 112조원 증가했다. 만일 지난 3년간 재정증가분의 2/3를 기본소득 예산으로 확보하였다면 75조원(대략 GDP 4%)의 재원이 마련되었을 것이다.

(2) 보편적 증세 및 부자 증세

다음으로 보편적 증세 및 부자 증세를 통해 GDP 5% 내지 10%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먼저 공유 자원의 성격이 강한 토지에 공시지가 기준 0.8% 단일세율로 국토보유세를 부과하면, 30조원의 세수로 국민 1인당 월 5만원의 토지배당을 실시할 수 있고, 탄소세 또는 환경세로 역시 30조원을 조달하여 탄소배당·환경배당을 하면 합해서 60조원(GDP 3%)의 세수로 월 10만원의 기본소득 재원이 마련된다(강남훈, 2019; 2020).

또한 부유세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 종부세를 금융자산을 포함한 부유세로 개편하고 최상위 0.5%의 고액자산가에 대해 순자산을 기준으로 20억 초과분에 대해 1%에서 3%까지 누진과세하면 20조원(GDP 1%) 이상이 추가로 마련될 수 있다(유종성, “차기 대통령 임기 내 GDP 10% 기본소득 실시하자”).

(3) 소득세의 비과세, 공제, 감면 폐지와 국민소득세 도입

그리고 기존 소득세의 비과세, 공제, 감면을 전면 폐지하거나 정책적으로 꼭 필요한 최소한만 남겨두고 모든 국민에게 종합 과세를 의무화하는 동시에 기본소득을 과세소득화하면 소득세율을 올리지 않고서도 GDP 5% 규모는 조달할 수 있다. 소득세의 비과세, 공제, 감면의 혜택은 고소득층일수록 크기 때문에 이러한 조세 감면을 폐지, 정비하고 이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사용하면 국민개세를 실현하는 동시에 소득재분배 효과를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유종성, 2018).

기본소득을 공적연금처럼 과세소득에 포함시키면 고소득자는 높은 한계세율에 따라 기본소득 수급액의 상당부분(최대 46.2%, 또는 금년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49.5%)을 세금으로 다시 내놓게 되고 저소득층은 낮은 세율(6.6%)로 작은 금액만 내면 되므로 실질적으로 소득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효과를 가진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총공공사회지출 중 소득세로 환수하는 금액이 GDP의 3~4%에 달해 재정 절감과 함께 재분배기능 제고를 동시에 이룩하고 있다.

또한, 이매뉴얼 사에즈와 개브리얼 주크먼(Saez & Zucman, 2019)이 21세기형 사회보장 재원으로 제안한 ‘국민소득세’(national income tax)를 도입, 기존의 소득세를 유지한 채 조세 행정상 파악 가능한 모든 소득 원천에 7%의 세금을 부과하면 GDP 5% 정도가 마련될 수 있다.

각종 사회보험료를 북유럽 및 프랑스 등과 같이 고용 관계를 따지지 말고 모든 노동 소득에 과세하는 사회보장세로 바꾸든지, 보다 진보적으로 자본소득까지 포함하는 사에즈와 주크먼의 국민소득세로 바꾼다면 국민소득세의 일부는 기본소득 재원으로, 나머지 일부는 사회보험 재원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소득을 신고하고 기본소득을 받는 개혁

위의 제안들을 종합하면 모든 소득에 15%를 원천과세하고, 기본소득과 사회보장급여의 지급은 종합소득 신고 조건부로 지급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현재 15% 세율이 적용되는 연소득 4,600만원까지는 종합소득 신고로 세금을 돌려받게 되고 기본소득과 사회보장 급여를 받게 되며 정책적으로 유지되는 일부 세액감면까지 받게 될 터이니 종합소득신고를 회피할 유인이 없어진다.

4,600만원~8,800만원 소득자는 9%p만 추가 과세하면 현행 24% 세율이 충족되며, 같은 방식으로 고소득자에 대한 누진과세를 하되 그동안 비과세, 분리과세하던 소득들을 모두 합산, 종합과세하여 조세의 형평성을 강화할 수 있다(퇴직소득과 양도소득처럼 부정기적인 소득에 대한 분류과세 체계는 유지). 이와 같이 종합소득 신고를 해야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기본소득 수급권을 납세의 의무와 연동시켜 무임승차를 방지할 수 있다.

또한, 기초생활급여나 EITC는 물론 고용보험과 공적연금을 소득보험으로 개편시에는 소득보험에 따른 급여까지도 조세 행정과 통합하여 소득파악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소득 축소 신고의 유인을 없애 공정하고 효율적인 조세-급여 체계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차기 정부가 5년 임기 내에 GDP 10% 수준의 생애맞춤형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조세-급여의 통합적 개혁을 추진할 것을 기대한다.

참고문헌

  • 강남훈. 2019. 『기본소득의 경제학』. 박종철출판사.
  • 강남훈. 2020. “부동산투기를 막기 위한 토지배당”.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쟁점토론회(6월 13일).
  • 유종성. 2018. “기본소득의 재정적 실현가능성과 재분배효과에 대한 고찰”. 한국사회정책 25(3): 3–35.
  • 유종성. 2020. “생애맞춤형 전국민 기본소득제의 필요성과 실현방안”. 유종성 외 12인. 『촛불 이후 한국 복지국가의 길을 묻다』. 40–74. 한울.
  • Saez, Emmanuel and Gabriel Zucman(2019). The Triumph of Injustice: How the Rich Dodge Taxes and How to Make Them Pay. W. W. Norton & Company.
  • Simon, Herbert A. 2000. “A Basic Income for All: UBI and the Flat Tax.”. Boston Review (October 01).
한국 사회 기본소득 도입 전략 연속 세미나(영상)

한국 사회 기본소득 도입 전략 연속 기고

기본소득의 한국적 적용을 위한 대안: 생애선택 기본소득
기본소득의 점진적 확대 방안: 경기도 기본소득 로드맵
사회보장개혁+기본소득과 참여소득을 통한 한국 복지국가의 혁신
기본공제를 활용한 기본소득 도입
생애맞춤형 전국민 기본소득과 조세-급여 개혁
안심소득제는 범복지제도

관련 포스트

북유럽 복지국가의 진짜 비결은 ‘소득공개’
재정 칸막이, 얼마나 심각한지 아시나요?
노동 약자 보호 못 하는 고용보험
기초자산과 기본소득, 어떻게 다를까?
복지 사각지대를 진정 없애려면
기본소득과 사랑의 관계는?
기본소득 총정리

관련 보고서

왜 기본소득인가?: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유안정성 사회로
국민기본소득제: 2021년부터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델 제안

--

--

LAB2050
LAB2050

다음세대 정책실험실 Policy Lab for Next Gene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