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공제를 활용한 기본소득 도입

[IDEA2050_32]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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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in readAug 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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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ixabay

최근 기본소득 논쟁이 뜨겁다. 기본소득 찬성 진영과 반대 진영의 논쟁을 듣다 보면, 타협점은 없어 보인다.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은 기본소득이 다른 선택적 복지보다 노동 공급을 잘 유지하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치 기본소득 찬성론자는 기본소득은 인류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체제로 나아가는 꿈같은 제도로 여기는 것도 같다.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은 예산 제약하에서 불가능한 정책이라고 한다. 똑같은 돈을 모두에게 나눠주면 저소득자의 복지 수준이 오히려 감소한다고 한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도입될 수 없거나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하는 망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다. 두 진영의 논쟁이 너무 치열해서 타협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혹시 중간은 없을까? 기본소득의 단점은 빼고 장점 일부만을 취합한 ‘정책믹스’(policy mix) 수단은 없을까?

소액주주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운동이기에 나쁜 것일까?

과거 장하성 주중 대사,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함께 소위 ‘소액주주운동’의 실무를 담당했던 적이 있다. 소액주주운동이란 상법에는 존재하나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인 소수주주권의 방법론을 사용한 운동이다. 예를 들어 소수 주주의 권한을 이용해서 주주총회에 참석해 재벌 총수 비리를 지적하곤 했다. 또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여 재벌 총수가 회사에 끼친 손해를 회사에 반납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를 ‘소액주주운동’이라고 명명해서 부르곤 했는데, 일부는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소액주주운동은 주주자본주의 이론이며, 주주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사상이라는 논리였다. 결국, 소액주주운동은 신자유주의라는 나쁜 사상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나쁜 운동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비판을 들으면 좀 억울했다. 재벌 총수의 비리를 지적하고자 상법에 있는 권리를 무기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까지 들어야 할까? 일단 신자유주의자라는 개념 자체부터 이해되지 않아 생산적인 반론을 내놓기도 어려웠다. 이는 이념 과잉이 낳은 비효율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소한 행동일지라도 그 이론적, 이념적 근거를 평가하는 것도 필요한 측면은 있다. 다만, 그 정도가 문제다. 이론적, 이념적 평가가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반대로 과잉도 문제다.

기본공제, 기본소득으로의 전환은 기본소득 이념보다는 재정개혁의 일환으로 해석해야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이 기본소득에도 생기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했을 때, 기본소득 논쟁이 발생했다. 코로나19라는 경제적 상황을 헤쳐나가자는데 이것이 기본소득인지 아닌지가 그렇게 중요할까? 물론, 이는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이 재난지원금을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해서 이념 논쟁(?)을 자초한 측면이 크기는 하다.

현재 세법에 ‘기본공제’라는 제도가 있다. 기본공제는 모든 소득세 납세자의 소득을 150만원씩 기본적으로 공제해주는 제도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내 소득이 150만원이면, 세금이 부과되는 과세소득은 0원이다. 내 소득이 1천만원이면, 기본공제 이후 과세소득은 850만원이 된다. 모든 소득세 납세자의 소득을 동일하게 공제해주니 공평한 제도일까?

그렇지 않다. 일단 기본공제라는 세금 감면 혜택은 세금 납부자에 한정된다. 근로소득자 중 40%는 면세점 이하로 어차피 세금이 없다. 그러니 기본공제는 상위 60% 중산층 이상 근로소득자만을 위한 제도다. 세금을 내는 사람에게만 세금 감면 혜택을 준다는 것 자체는 그리 이상한 것만은 아니다. 다만, 세금을 내는 사람 중에서도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제도라는 점은 좀 이상하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연봉 약 3천만원대 근로소득자가 적용받는 (한계)세율[1]은 6%다. 기본공제로 150만원 소득을 감면해주는데 6% 세율을 적용받으면, 지방소득세까지 10만원 세금을 감면받게 된다. 그런데 연봉 약 8천만원대 근로소득자까지 적용 받는 세율은 15%다. 150만원 기본공제 혜택에 따른 실제 세금 감면액은 지방소득세까지 25만원이 된다.

문제는 고소득자, 초고소득자의 세금 감면액이 지나치게 크다는데 있다. 연봉이 1억 5천만원이 되면, 세금 감면 액수가 58만원이 된다. 연봉이 10억원이 넘는 초고소득자는 74만원의 세금 감면 혜택을 보게 된다. 정리하자면 기본공제는 하위 40%에게는 단 한 푼의 세금 감면 혜택을 주지 못하면서, 연봉 약 8천만원대 근로소득자의 세금은 25만원 깎아 준다. 특히, 연봉 10억원 초과 초고소득자에게는 74만원의 세금 감면 혜택을 준다.

그런데 만약 이와 같은 기본공제를 연 30만원의 기본소득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떨까? 기본공제가 없어지는 대신 모든 국민에게 연 30만원의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저소득 근로자는 기본소득 금액만큼 이득이다. 중산층은 큰 변화가 없게 된다. 다만, 시간차 혜택을 보게 된다. 올해 30만원 현금이 생기지만 세금을 내는 시점은 내년이다.

반면, 고소득자는 기본소득 액수보다 세금으로 추가로 지출할 금액이 더 많아지게 된다. 그런데 이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소득이 높으니까 세금을 더 내라는 얘기가 아니다. 소득이 높다는 이유로 그동안 더 많은 세금을 감면해 주는 현 제도는 좀 더 효율적인 제도로 개선될 여지가 있다. 또한 이렇게 되면 전국민에 매년 정기적인 기본소득을 주면서도 재원부담은 제한적일 수있다.

기본공제 원리에 부합하는 기본소득

현 기본공제가 소득 역진적 제도라는 사실은 알겠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기본소득으로 전환해야 할까? 이는 기본공제 원리에 기본소득이 부합하기 때문이다. 기본공제는 소득자뿐만 아니라 부양가족의 인원 수만큼 일괄적으로 150만원의 소득을 공제해주는 제도다. 즉, 소득자가 1인 가구면 150만원만 공제된다. 부양가족이 한 명 있으면, 본인까지 총 300만원이 공제되는 제도다. 즉, 부양가족이 두 명있는 연봉 약 3천만원대 저소득 근로소득자는 30만원의 세금만 감면되지만, 부양가족이 두 명있는 연봉 10억원 초과 근로소득자는 223만원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그렇다면 소득자뿐만 아니라 모든 부양가족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소득공제 대신 전 국민에 연간 약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기본공제의 의미를 살리면서도 역진성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연간 30만원의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을 통해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적극적 기본소득론자가 보기에는 너무 적은 금액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올해 코로나19로 4인 가구 이상에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 금액이 100만원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식료품 등 기존에 지출되던 품목 사용을 대체한 것 만은 아니라고 한다. 침대, 쇼파 등 목돈(?)이 생기면 사려고 했던 품목들이 많이 팔렸다고 한다. 매년 4인 가구에 제공되는 120만원은 새로운 소비를 창출할 정도의 규모는 된다.

전국민이 국가와 재정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확보하면 조세 인프라와 복지 전달 체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어

특히, 전국민에 기본소득이 정기적으로 지급되었을 때, 얻게 되는 커다란 이점이 있다. 바로 전국민이 국가와 재정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있는 수단이 생긴다는 점이다.

지난 5월 말 사천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지 한 달이 지난 할머니가 발견되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수령하지 않아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아 발견되었다. 마찬가지로 사천시는 긴급재난지원금 미수령자인 50대 남성 시신을 한 컨테이너에서 발견했다. 부검 결과 사인은 기아사로 밝혀졌다.

전국민이 예외 없이 국가의 현금 지원을 받으면 그 과정에서 긴급한 위기상황을 대처할 수도 있다. 모든 시민이 국가와 재정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얻게 되면, 기존 복지제도의 중복과 배제를 피할 수도 있다. 즉, 금융계좌가 없는 시민 구제부터 중복지원금, 중복보조금을 피할 수 있게끔 일원화된 계좌로도 활용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면, 전국민 모두가 세금을 신고하는 전국민 개세주의(皆稅主義)를 이룩할 수도 있다. 혹자는 줬다 뺏으면 국민 원망이 더 크다고 하는데 일부를 원천징수하고 지급하면, 그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연말정산 환급을 받을 수 있으니 국민 모두가 홈텍스를 통해 간편하게 세금 신고를 하게된다. 국민 개세주의가 이룩되면 조세 인프라는 획기적으로 증대될 수 있다.

기본소득 반대론자도 찬성할 수 있는 다양한 기본소득 방법론

이쯤에서 고백을 하자면 나는 기본소득론자는 아니다. 재정 지출 구조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효율적 지출 방안을 연구하는 일이 직업인 사람 입장에서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가끔 우리 사회의 문제를 풀 수 있는 ‘팬시’한 예산 사업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곤 한다. 불행히도 정답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새롭고 재미있는 정답은 없다. 내가 생각하는 답은 기존에 이미 존재하는 기본적 복지제도를 강화하여 촘촘히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기초생활 보장제도를 강화해서 누구나 국민 최저선을 확보하고, 자활급여와 근로장려세제를 강화하여 차상위 계층도 적절한 복지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없애서 질병, 실업, 퇴직 이후의 삶에 대응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아동수당, 기초연금을 확대하여 생애 주기별 복지 로드맵을 완성한다.”

이렇게 기존 복지제도만 잘 완성하면, 경제적 능력에 상관없이, 사회적 위기는 물론 생애 주기별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좀 쉽게 말해서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실직한 사람, 어린이나 어르신에 필요한 적절한 복지가 완성된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니,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예산 제약하에서 이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유일한 정책 방향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본소득 도입 논의는 환영한다. 논의만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도입도 찬성한다.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원래 현실에서의 정책은 여러 가지 모순되는 정책을 동시에 도입할 수 밖에 없다. 부양의무제 폐지 등 기초생활보장제도 완성이 가장 시급하다고 고용보험 적용 대상 확대를 미뤄야 할까? 전국민 고용보험이 이룩되지 않았다고 부분적 기본소득 도입은 나중 문제일까? 내가 선호하는 각종 선별적 복지제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보편적 복지제도를 뒤로 미루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현실은 개문발차일 수 밖에 없다. 더 필요하고 더 중요한 제도가 완성되지 전까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도입할 수 있는 제도는 없다.

현실은 이론과 다르다. 이론은 구분하고 나누는 것에서 시작한다. 정의를 내리고 장단점을 밝히는 것이 이론이다. 반면, 현실에서는 각종 이론에서 주장하는 정책들을 통합하고 섞어서 정책믹스를 만들어야 한다.

기본소득은 지나치게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정책믹스의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지난 2016년 서울 기본소득 총회에서 지급 수준이 낮은 부분기본소득(Partial Basic Income: PBI)도 가능해졌다. 기본소득의 정의에 보편성, 무조건성, 현금성, 개별성, 정기성은 포함되었으나 충분성은 제외되었다. 비기본소득론자가 좀 더 적극적 타협책을 제안하자면, 보편성도 좀 더 유연하게 해석해서 전국민이 아닌 연령 등 일정 조건에만 지급하는 다양한 형태의 확장된 기본소득도 존재할 수 있다.

과거 보편복지냐 선별복지냐로 둘로 나누어서 치열하게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정답은 드러났다. 보편복지와 선별복지가 적절하게 섞인 정책믹스가 정답이다. 기본소득도 마찬가지다. 기본소득은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아니다. 여러 정책 중,하나로 작용할 수 있는 제도다.

언론과 다수결보다 철(무기)과 피(전쟁)가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한 극단적인 보수 정치인이 있다. 바로 철의 재상 비스마르크다. 그런데 그 비스마르크는 의료보험, 산재보험, 연금보험 등 사회보장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토록 싫어했던 사회주의자의 정책을 누구보다도 먼저 도입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기본소득론자는 아니다. 그러나 조세 인프라 확충과 복지 전달 체제 개선을 위해서라면, 기본소득적인 정책도입도 두렵지 않다.

[1] 한계세율을 의미. 한계세율은 추가로 증가하는 소득에 적용되는 세율. 전체 소득대비 납부하는 세금 액수인 평균세율과는 다른 개념으로 소득공제를 받게 되면, 한계세율만큼 세금이 절약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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